국민대학교 교직과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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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 국민대 총장
"이 시대는 겸손·정직의 '촌놈 리더십' 원한다"
대학 개혁·발전 뚝심으로 밀어붙여
"대구, 폐쇄성 못버리면 희망 없어"


2004년 5월 국민대 주차장 준공식에서 김문환 총장이
이 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이효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민대 서울 북악캠퍼스에서 지난 18일 만난 의성 출신인 김문환 총장이 고향 대구·경북을 향해 던진 화두는 '개방'이다. 2시간이 넘는 긴 인터뷰 동안 그는 왜 대구가 열려야 하는가를 두고 열변을 토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호방한 모습에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대구는 수백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여러가지 경제지표 등을 보면 대구의 위상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법대 교수 출신인 그는 의외로 대구· 경북 주민들의 소득 규모, 구미공단의 무역실적 등 지역의 경제사정을 꽤 소상히 꿰뚫고 있다.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또다른 모습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방화 정책은 한국을 가난에서 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구·경북 사람은 끼리끼리 뭉치고, 타 지역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평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폐쇄적이라는 것이지요. 폐쇄성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적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의 주장은 호소에 가깝다.

"5년 전 아들이 서울 삼성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옆 병석에 대구에서 다리부상을 당해 올라온 용달차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다리절단밖에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루 앞두고, 동생의 권유로 혹시나 하는 맘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8~9차례 수술을 받고서 거의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구와 서울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첨단지식이 잘 흡수되지 않습니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지요. 그러면 구태의연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대구가 못따라가는 것 아닙니까."

"개방화 정신은 진취적 정신입니다. 저만 해도 시골 출신 아닙니까. 다행히 부모가 일찍 깨어서 대구로, 서울로 보내주어서 교육받을 기회를 얻었고, 그 때문에 오늘날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지구촌 시대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의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몸만 세계로 나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올해는 대구시장 선거가 치러질 것인데, 대구의 변화를 리더해 나갈 시장의 덕목을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에게서 단번에 '촌놈 리더십'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이 시대는 대중화의 시대입니다. 엘리트 의식으로는 안됩니다. 퍼질고 앉아서 누구와도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만해서는 안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화·개방화를 통해 대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대구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촌놈 리더십'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4년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는 대학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고매한 총장의 이미지를 내던지고 대학 홍보와 연구비 유치를 위해 세일즈맨으로 변신해 동분서주했다. 안으로는 교수임용제 혁신 등 단호한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촌놈의 뚝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치'는 상아탑에도 엄연히 존재하므로 힘든 점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법학자로서 전자상거래와 같은 첨단 법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사외이사를 겸직,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점이 그의 대외활동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 산자부 전기위원회 위원장(차관급)과 신용카드학회 등 각종 학회의 학회장 등을 맡아 각계각층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점은 큰 장점이다.

"김동건 영남대 이사장,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 서정석 대구변호사협회장, 조용국 대림수산 사장 등과는 진실된 교우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친구들이지요. 김세재 동일강업 사장은 제가 어려울 때 정신적·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고요. 조해녕 대구시장과 그의 두 동생과는 어린시절 같이 자랐습니다. 법대에 간 것도 조 시장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의성에서 나서 자라다 경북중 입학과 함께 대구로 온 김 총장은 중·고등 6년 동안 거주지이던 외가(달성네거리)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녔다고 한다. 아버지가 '절약의 고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는 힘이 들었지만 지금도 다리가 매우 튼튼한 것은 그 영향인 것 같다며 매우 진지한 표정이다. 그는 위로 누나 넷이 있는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 사랑을 독차지했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뭐든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는 "30대 초반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플 때를 꼽으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라며 숙연해졌다.

그리고 대학교 총장으로서 청소년에게도 한마디 말을 잊지 않았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가지면 실현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려면 남의 좋은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극기하십시오."

◇ 김문환 총장 약력

△경북중·고, 1969년 서울대 법학과·동 대학원 법학과 졸 △82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 졸, 89년 법학박사(서울대) △73∼78년 공군사관학교 교관, 79년 국민대 법대 교수(현), 86년 미국 산타클라라대 교환교수, 96년 국민대 법과대학장, 98년 동산업재산권대학원장 △2001년 국제거래법학회 회장, 2002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2003년 한국인터넷법학회 회장, 컴퓨터 프로그램 심의조정위원회 위원(현) △2004년 국민대 총장(현)


학문은 자유롭게 연구자금 풍부하게
- 김 총장의 교육철학

김문환 총장은 교육철학을 묻자 "고르바초프를 존경한다"며 운을 뗐다. 고르비는 소련을 망하게 한 인물이지만 인류에게는 올바른 길을 안내한 사람으로서 인류발전사에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 교육에도 고르비가 주장한 개방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총장으로서 그의 목표는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를 만드는 것 △좋은 제자를 알아보는 훌륭한 선생을 양성하는 것 △학내 연구분위기를 조성할 자원을 마련하는 것 등 세 가지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연구비확충에 나서 2004년 목표치로 내세웠던 국책연구비 유치 100억원을 초과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 목표인 200억원을 6개월 만에 초과 달성, 540억원을 수주했다. 이는 국민대의 연구비 유치 역사에서 쾌거로 평가된다.

개교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도약 2010프로젝트'라는 장기발전계획을 추진하면서 국책연구비 유치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그는 산학협동을 통한 현장중심의 실용주의를 펼치고,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교육을 내실화할 것도 강조한다.


성곡 김성곤과 국민대
- 대구 출신 쌍용그룹 창업자 59년 학교인수 중흥 이끌어

국민대는 대구와 인연이 깊다. 대구 출신으로 쌍용그룹 창업자이자 정치인인 성곡 김성곤 선생(사진)이 1959년 10월에 학교를 인수, 오랜 재단 분규에 종지부를 찍고 중흥과 발전의 일대 전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자제인 김석원씨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곡은 75년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재단법인 국민학원의 이사장, 이사를 역임하며 국민대의 중흥과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재단이사장으로서 성곡은 매년 재단에 2천만~3천만원씩, 현 시가로는 30억~40억원 되는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학교 발전의 기반을 확충해 갔고 건전한 재단운영의길을 열었던 것이다. 당시 사립대학을 운영하는데 성곡과 같이 거액의 현금을 제공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재단의 영향 때문인지 국민대에는 김 총장을 비롯해 현승일 국민대 교수(전 국회의원), 정성진 국가청렴위원회위원장(장관급) 등 대구·경북 출신 총장이 여러 명 배출되기도 했다. 한편 국민대는 현재 11개 단과대학, 일반대학원, 3개 전문대학원 및 10개 특수대학원, 33개 부설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400여명의 교수와 1만5천여명 학생이 재학 중이고, 300여명의 직원이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다. 재단이사장은 이현재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