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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코리안… ‘한국 토종’ 4인의 고군분투 성공담 / 김보성 (공디 93)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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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평가 냉정… 웃으며 NO 할수 있어야”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의 인재들이 꿈꾸는 곳이다. 그만큼 실리콘밸리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토종 한국인’이 이곳에 진입했다면 ‘누가 어떻게 갔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하다. 본보는 12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 전문가 4인과 자리를 함께해 그들의 실리콘밸리 진출기와 분투기를 들어봤다. 그들은 분야는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도전 정신과 배짱을 갖춰야 하며, 학생시절부터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 영어의 벽 질문: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뒤 20대 후반 이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니 영어 때문에 고생했을 것 같다. 김효린 씨=1990년대 삼성에 근무할 때 6주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연수한 적이 있을 뿐 영어권 경험이 없었다. 미국에 온 이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1999년 뉴욕대(NYU)에 들어가 팀 프로젝트를 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못 알아들을 만큼 말이 빨라 정말 힘들었다. 무조건 CNN방송을 틀어 놓고 잤다. 영어 부족을 사전 준비로 채워 갔다. 가능하면 간결하게, 한마디로 의사소통이 되도록 정리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다. 김보성 씨=내 영어 실력은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마지노선(최저수준)이다(웃음). 회사에서 성장하는 데 이런 실력이 약점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지난 6개월간 600∼800달러를 과외비로 썼다. 다만 디자인 분야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들이 미쳤다고 할 만한 아이디어와 나만의 창의를 살리기 위해 주력했고, 인정도 받고 있다. 배정융 씨=초등학교 시절 이탈리아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나는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영어의 벽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내가 발음이 좀 된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친구들은 비속어(slang)나 교과서에 안 나오는 구어체를 썼다. 멀쩡하게 영어를 하지만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 미국 기업에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특히 취업 인터뷰할 때는 의사소통 정도가 아니라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지게 말해야 한다. 이구형 씨=돌이켜보니 영어가 아니라 용어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외국인은 영어에 한계가 있으니까, 실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창업자니까 직원들이 내 영어를 다 알아듣는다. 못 알아들으면 자기네가 손해니까. ○ 나를 어떻게 세일즈했나 질문: 실리콘밸리에는 전 세계의 인재가몰려든다. 미국 회사에 ‘나를 뽑아야 좋다’는 믿음을 줘야 할 정도로 자신을 잘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자신을 세일즈했는지 궁금하다. 김보성=대학 졸업 후 영국 왕립미술대학(RCA) 등에서 3년간 현장 실무경험을 쌓은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왔으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아시아 실무경험, 유럽 대학 공부가 미국인에게 ‘이 친구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줬다. 김효린=대학원 졸업 전에 무급 인턴을 했던 게 도움이 됐다. 인턴을 4학기 때 시작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정식 채용으로 이어졌다. 뉴욕 업무 경험이 생기니까 실리콘밸리로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미국 회사는 이런 게 다르다 배정융=한국은 입사 동기끼리 흉금을 터놓고, 고향 학교 선후배 네트워크도 형성된다. 그러나 미국 회사에서는 아는 사이라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애질런트에 처음 입사했을 때 현장교육(OJT) 기간이 아주 짧았다.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알아서 해야 한다. 봐주는 기간(허니문)이 아주 짧고, 1년 뒤 바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김효린=어도비에 온 뒤 1인당 사무실을 하나씩 받았고 1주차에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이후론 나 홀로였다. 내가 앞날을 구상하고 주도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어진다. 감 잡는 데 3개월은 흘러간다. 삼성에서 6년 반 일했지만, 주로 위로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배치받고 시키는 일만 했는데 미국 회사는 이와 달랐다. 배정융=회사 내 근무시간이 길지 않다. 8시 출근, 5시 퇴근이 철저히 지켜진다. 그 시간 안에 일하고, 인맥 찾아 사람 사귀기를 다 해야 한다. 눈코 뜰 새가 없다. 내가 불이익을 안 당하기 위해 사내 정보라도 얻으려면 정시에 퇴근하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일을 압축적으로 하면서 친화력을 발휘해야 했다. 김보성=우리 회사도 사수 부사수처럼 가르쳐 주는 제도는 없다. 하지만 디자인 회사인 IDEO는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과 문화가 좀 달라 점심 먹을 때 같이 간다. 내 책상이 없지만 컨설팅 팀이 구성되면 프로젝트 룸으로 출근해 같이 모여 일하니까 가족처럼 지낸다. 이구형=미국 회사는 처음부터 필요한 사람을 뽑아 바로 투입한다. 가르쳐 줄 걸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인에겐 적극성이 제일 요구되는 덕목이다. 실험장비 사 달라, 어디 어디로 출장 보내 달라고 달라붙지 않으면 뒤로 밀린다. “No”라는 말을 웃으면서 할 줄 알아야 한다. 영어가 안 되고, 외국인이란 점에서 열 받으면 성질내게 된다. 그러면 큰일 난다. 영어가 짧다고 뒤로 물러서면 의사소통 및 업무성과도 뒤로 처진다. 김보성=미국 회사에서는 높은 사람의 지시라는 이유로 그냥 따라야 한다는 게 없다. 미국 회사에 다닐 때 대화 소재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지만, 난 특별히 느끼지 못했다. 창의력과 감각으로 인정받으면서 내 영어가 짧아도 ‘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라며 내 말에 귀 기울이는 걸 느꼈다. ○ ‘사내 정치’도 필요하다 배정융=자기 PR가 중요하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야 한다. 미국인은 일찍 퇴근한 뒤에 강아지 운동시키기, 사진, 자전거 등 취미생활에 푹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내 인맥 챙기기에 성공하려면 나도 무언가 하나에 빠져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다. 골프 핸디캡이 18 정도인데 골프가 회사 생활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김효린=우리 회사는 새 최고경영자(CEO)가 엔지니어 출신의 인도 사람이다. 내가 스스로 ‘난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두면 거기서 끝난다. ‘이만큼 일했으니까 상위 직급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연봉도 평가기간 때 말하기도 하지만, 틈틈이 지금 혹은 나중에 올려 달라고 말해 둬야 한다. 관리자는 일일이 기억 못한다. 심지어 기대하는 연봉 인상 액수까지 말해 본 적이 있다. 김보성=입사 첫해부터 동료의 평가를 해 봤다. 워낙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해서 그런지 신랄한 비판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승진해 옮겨 온 인재도 ‘월급이 줄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고의 디자이너와 같이 일해서 실력을 키우는 게 장래를 위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김효린=어도비의 동료 평가는 처절하다. 어떤 직원은 ‘몇 월 며칠에 이런 요청을 했는데, 약속과 달리 하루 늦었다’는 식으로 쓴다. 나도 동료평가서 적나라하게 쓰느라 2, 3일은 시간을 낸다. 지나고 보니까 이런 평가가 더 도움이 되었다. 보스는 속여도 동료는 못 속인다. 새너제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 구 형 배 정 융 김 효 린 김 보 성 출처 : 동아일보|기사입력 2007-12-21 03:12 |최종수정2007-12-21 07:15 |